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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퍼옴)

머찌니7109 2009. 8. 24. 13:04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1963, 밀그램)]

 

위에서 시키는 명령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생각으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입니다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유태인을 죽이지 않았으며,

단지 명령을 따른 것뿐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만약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으면 큰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보다는,

단지 자신의 행동은 위로부터 받은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을 자행하면서, 단지 명령과 권위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심리학자인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권위에 복종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한 가지 실험을 고안하였다.

 

이 실험은 복종을 연구하려고 계획되었지만, 이 목적을 실험 참가자에게 알려줄

경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가짜 목적을 알려주었다. 가짜 목적이란

처벌의 강도가 학습과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실험참가자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실험참가자와 함께 제비를 뽑게 하여,

 한 사람은 <학생>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는 <교사>의 역할을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각자의 역할을 알려주었는데, 학생은 교사가 제시하는 자료를

완전히 암기하는 일이었고, 교사는 암기해야 할 자료를 제시하면서 학생의 답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들에게 "학생들을 테스트한 후 만약 틀릴 경우 한 번에 15볼트씩의 약한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지시한 후, 계속 틀릴 때마다 전압을 15볼트씩 올려가도록

지시했다. 문자 그대로 징벌(전기충격)에 따른 학습효과(암기력의 향상)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교사의 책상 위에는 전기쇼크 장치가 놓여 있는데, 이 장치에는 전기쇼크를

주는 여러 개의 스위치가 달려 있었다.

 

15V에서 시작하여 450V까지 각기 다른 강도의 쇼크를 줄 수 있었고,

강도에 따라 ‘약함’ ‘매우 강함’ ‘위험함’ 등의 표시를 해 놓았다.

 

실험자는 학생은 칸막이가 되어 있는 옆방으로 데리고 갔으며,

“과도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 손을 묶어야 한다”고 말한 뒤 학생의 손을 의자에 묶었다.

이 모든 과정을 교사가 직접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은 칸막이가 있는 옆방에 있었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은 인터폰을 통해서만

대화할 수 있었고, 서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실험의 주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선생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전압을 높여 가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연구하고자 함이 바로 그 숨겨진 목적이었다.

 

선생 그룹으로 선정된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사실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자원자들이 아니라 모두 실험 팀의 일원이었고,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점차

고통스러워하는 학생의 반응도 미리 녹음된것이었고, 교사가 전기충격을 조금씩

높일 때마다 그에 맞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과연 선생 역할 분담자들이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450볼트에 이를 때까지

전압을 높여 가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이었다.

 

실험이 시작되기 전 밀그램 교수는 150볼트 이상으로 전압을 높여야 할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고, 실험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추정했다.

 

누구라도 실험참여의 대가로 4.5달러 받으려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잘해야 자원자들의 0.1퍼센트 정도가 450볼트에 이르도록 계속

전기충격을 가할 것이라는 가정이 세워졌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실험자는 교사에게 학생이 받게 되는 전기쇼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3번째인 45V의 전기쇼크를 주었다.

이는 몸을 움찔하게 할 정도로 따가운 것이었다.

 

교사는 이 전기충격을 경험하였고,이내 실험은 시작되었다.

교사는 학생에게 암기할 자료를 제시하였고, 학생은 그 자료를 암기하였다.

암기에 성공하면 넘어가지만, 암기를 못하거나 틀리게 되면 교사는 지시받은 데로

전기쇼크를 주어야 한다.

 

학생은 암기를 잘 못하였고, 교사는 조금씩 전기쇼크를 높여갔다.

학생이 받는  전기쇼크가 강해질 때마다 신음소리,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강해지는 것을

인터폰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120V에 이르렀을 때는 학생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150V에 이르렀을 때에는 실험을 멈추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으며,180V에 다다르자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다고 울부짖듯 말했다.

 

300V의 충격을 주자 학생은 비명을 지르며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겠다고 저항하면서

실험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 보다 높은 강도의 전기충격을 주었을 때는

고통에 찬 비명소리만 들려왔다.

 

 그리고 330V를  지난 단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학생은 기절한 듯이 보였다.

 

학생이 전기충격을 받으면서 괴로워하자 교사는 실험자를 바라보면서 지시를

기다렸다. 이 때 실험자는 실험이 계속 진행되어야 하며,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전기충격이 당장에는 고통스럽지만 신체에 영구적인 해는 없다면서,

전기충격을 계속 주라고 하였다.

 

 

그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실험에 참가한 40명 모두가 300V까지는 전기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26명은 450V까지 전기충격을 주었다.

 

지시에 따라서... 고통에 찬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학생에게...

 

실험 참가자 중 무려 65퍼센트가 450볼트까지 전압을 높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혹시 이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아주 악질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충격적인 실험은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여러번 반복되었는데,

그 때마다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 사실은 이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이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을 자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험에서는 교사 역할을 했던 실험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명령을 하는 사람의 권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규칙과 규범이 작동하고 있을 때에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험에서 실험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으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실험실에서는 실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이 있었다.

 

다시 말해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아주 악하게 보이는 행동도, 그 원인이 그 사람의 악한 성격에 있다기

보다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촛불진압을 과도하게 진압한 경찰이나 전경들은

그들이 무죄라는 것인가?

 

단지 그들의 죄는 그들이 처한 상황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실험이 범죄를 저지를 그들에게 결코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450V 까지 전기충격을 주기 이전에

실험자에게 반항하면서 실험을 그만둔 14명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면에서 본다면 그런 악행을 저지른 것은 분명히

상황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요인도 있을 것이다.

 

만약 개인의 요인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심판을 받아야 하고, 정죄를 받아야 한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1971, 짐바르도)]

짐바르도 교수는 실험결과 우리가 언제든지 나약한 죄수와

악랄한 간수 사이를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이 실험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의 접근을 시도 한다.

 

즉, 여기서 실험 중간에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사람들(일종의 의로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 이후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주목한 것이다.

 

예컨대 이런 말도 안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실험 주관자를 비난하든지, 아니면 좀 더 상급자를 만나보겠다고 항의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불행히도 그렇게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971년 짐바르도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두 70명의 지원자 중 "성숙하고,

감정적으로 안정되었으며, 정상적이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대학생" 24명을 선발해서

새로운 실험에 착수한다. 이번에는 감옥의 상황을 설정하여 각각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도록 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끝내 결과를 산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6일만에 실험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예상치 못했던 너무 끔찍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해서

실험을 더 이상 계속했다가는 완전히 인간성이 파괴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즉, 간수 역할을 맡은 몇몇 남학생들은 죄수 역할의 학생들이 마치 인간이

아닌 저열한 동물인 것처럼 가혹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죄수역할을 맡은 몇몇은

외부적으로는 노예근성을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오직 탈출과 복수만을 꿈꾸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던 까닭이었다. 역할과 자아가 뒤섞이면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는 이런 실험들과 비슷한 상황을 기초로 "The Wave"라는 소설도 나오고,

독일에서 "Experiment"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Experiment 영화]

 

■ Story

 

택시 기사인 타렉(모리츠 블라입트로이)은 심리 실험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하는

신문광고를 본다.

 

고립된 감옥에서 2주일을 지내고 4천마르크를 받는 실험이다.

 

타렉은 전 직장인 신문사에 가서 감옥 체험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고 제안한다.

 

사례금도 받고, 충격적인 기사도 발표하겠다는 일거양득이 목적.

 

20명의 지원자들은 간수와 죄수로 나뉘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대학병원 지하에

마련된 감옥에서 2주일간의 실험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누구나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만,

단 사흘 만에 감옥은 통제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여든다.

 

■ Review

 

인간은 사악한 존재일까? 한줌의 권력을 쥐어주기만 하면, 그 힘에 도취되어

이성을 잃어버리는 약한 존재일까? <엑스페리먼트>는 그렇다고 답한다.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건 평등한 지원자 20명은 12명의 죄수와 8명의 간수로 나뉜다.

 

개인의 지적, 육체적 능력은 상관없다. 단지 누구는 죄수이고, 누구는 간수일 뿐이다.

 

 간수복을 입은 이들과 죄수복을 입은 이들은 복장만 다를 뿐 동등한 피실험자이다.

 

각자의 감방에 들어가 창살이 닫힌 뒤에도, 감옥은 현실이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평등하다고.하지만 명령을 내리고, 누군가 불복하고,

다시 그 명령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는 순간 그들의 위계는 철저하게

가려진다.

 

사회는 폭력에 의해서 결정되고, 통제된다.

 

실험은 단순하게 시작한다.

소화가 안 돼 우유를 마실 수 없다는 죄수와 음식을 남길 수 없다는 규칙이 충돌한다.

 타렉이 대신 우유를 마시고 승리를 거둔다.

수모를 당한 간수는 다시 돌아와 타렉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역전을 한다.

 

다음날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이번에는 모든 죄수가 함께 팔굽혀펴기를 한다.

집단적으로 저항을 한 것이다.

 

자신들의 명령이 무시당한다는 것을 느낀 간수들 역시 하나로 뭉친다.

 그리고 ‘통치’에는 모멸감을 주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죄수’의 옷을 벗기고, 침대를 뺏는다. 다음날 타렉이 다시 도발을 하자,

 이번에는 한밤중에 타렉을 납치하여 머리를 밀어버린다.

 

 

<엑스페리먼트>는 좁은 공간, 모든 것이 감시되는 감옥 안에서 상황이 벌어진다.

모든 것이 서로 노출되고, 연구자들이 다시 카메라로 감시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통제불능으로만 흘러간다. 아니 통제를 위하여, 스스로 통제를 벗어난다.

 

단지 간수의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인격이 바뀐다.

바뀌지 않으면 견뎌날 수 없다.

 

간수들의 폭력에 반대하던 간수는 오히려 따돌림을 받고,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감방에 갇힌다. 그 상황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

 

 

묘한 것은, 그들의 인격이 점차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하던 타렉 역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는 표정을 잃어버린다.

 

죄수복을 입은 그들은 단지 77번, 혹은 69번일 뿐이다.

죄수들은, 간수들에게 철저하게 굴복한다.

간수들은 자신의 제복에만 권위를 부여하고, 인격을 버린다.

타인을 굴복시키는 일처럼 황홀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간수들은

마침내 연구소를 장악하고, ‘무력독재’를 완성한다.

 

<엑스페리먼트>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타렉과 간수인 베루스다.

7년간 단 한번도 회사에 지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규율을 잘 지키던 베루스는,

지배자가 된 순간 모든 이성을 잃어버린다.

아니 잃어버린 것은 인간성이고,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이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은 효과적이고 일사불란한 통제이고 방법은 폭력이다.

본보기로 한 사람을 괴롭히고, 한 사람의 잘못을 이유로 전체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한다.

만약 그가, 정상적인 사회제도 안에 있었다면 아주 양순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잔인한 독재자가 된 것은 감옥이라는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 그 자체 때문일까.

 

타렉의 도발과 저항은 처음에는 직업의식이었고, 나중에는 일종의 본능적인 생존의식이다.

혹시 타렉이 간수의 입장이었다면, 그 역시 베루스처럼 변하고 그 경험을 기사로

쓰지 않았을까. 폭력에 굴복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루한 존재인지를.

<엑스페리먼트>는 그 누구도, 결코 이 지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실을 던져준다.

 

아주 강력하고 묵직한 주먹으로 온몸을 맞은 느낌이다.

출처 :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588881